무리하지 않고 차근 차근, 힘들었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힘들지 않았다. 아침 7시 40분 출발, 저녁 5시 30분 하산 완료. 무려 10시간을 꼬박 산에서 보냈다. 밥 먹고 중간중간 쉰 시간을 빼도 최소 8시간 이상 산길을 걸은 셈이다. 거리로는 성판악-백록담 9.6km * 2 = 19.2km. 엄마가 선두, 내가 두번째, 그리고 오빠가 제일 뒤에서 걸으며 엄마 페이스에 맞추어 천천히 올라갔다. 울 어무이 짱! 막판 스테미너는 나보다 엄마가 더 좋았던 듯 하다. 난 마지막 한시간 가량, 발목과 무릎 통증에 엄청 괴로웠는데.. ㅠㅠ
한라산은 뭐랄까, TV에서 자주 보던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본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수목의 키가 낮아지고 제법 너른 평지가 펼쳐졌다. 한라산 설경을 보도하는 뉴스 화면에서 자주 보던 바로 그 곳. 평소에는 등산로를 제외하고 펜스가 쳐져 있지만 눈꽃축제 때는 이를 개방해 눈꽃이 핀 나무 사이를 거닐 수 있다고 한다. 백록담에 물이 가득하지 않은 게 아쉬웠지만, 1년 중 그런 날이 얼마 안된다니 아쉬움을 달랠 밖에. 출발할 때는 하늘이 잔뜩 흐린데다 구름이 낮게 걸려 걱정했는데,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이 걷히고 해가 쨍쨍해졌다. 기껏 힘들게 올라와서 구름 때문에 백록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첫 등반에 이렇게 맑은 날씨를 만나다니 운이 좋았다.
사진을 보니 힘들어서 그런지 얼굴이 팅팅 붓고 참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가고 싶다. 눈꽃피는 겨울에도, 초록이 막 돋아나는 봄에도, 그리고 푸르름이 짙을 여름에도. 한라산의 사계절을 다 보고 싶다는 얘기지 ㅎㅎ. '과연 할 수 있을까' 싶던 일을 해내고 난 뒤의 뿌듯함에 조금 자만해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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